칼럼 | 10월 제철음식 '단감-강화 순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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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정이안한의원 작성일26-10-26 11:50 조회30회본문
[정이안의 건강노트] 10월 제철음식'단감-강화 순무'
주간한국 2026.10.08
긴장을 풀고 생기를 채우다: 10월의 선물, 단감과 강화 순무
아침저녁으로 불어오는 소슬바람에 옷깃을 여미게 되는 10월이다. 계절이 여름의 뜨거운 양(陽)의 기운을 거두고 서늘한 음(陰)의 결로 접어들 때, 인간의 자율신경계 역시 커다란 전환점을 맞는다. 현대인들은 늘 긴장과 과로, 끝없는 자극 속에 살아가느라 교감신경이 과도하게 곤두서 있기 십상이다. 심장은 쉬지 않고 쿵쾅거리고, 호흡은 얕아지며, 소화기관은 딱딱하게 굳어버린다. 계절의 온도가 뚝 떨어지는 이맘때야말로 날 선 신경의 스위치를 내리고, 우리 몸을 편안한 휴식과 회복의 상태로 이끄는 ‘부교감신경’을 깨워야 할 때다. 다행히 자연은 늘 제철 식재료라는 가장 정확한 처방전을 내놓는다. 가을 볕을 머금어 둥글어진 ‘단감’과 해풍 속에서 알알이 차오른 ‘강화 순무’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감은 오랜 세월 한반도의 가을 풍경을 대표해 온 유서 깊은 과일이다. 삼국시대 이전부터 우리 땅에서 자생해 온 감은 조선시대에 이르러 나라의 제사상에 오르는 필수 과실이자, 흉년에 백성을 구하는 든든한 구황작물로 자리매김했다. 본래 감나무는 떫은맛이 강해 홍시나 곶감으로 삭혀 먹는 것이 일반적이었으나, 근대에 들어 떫은맛이 저절로 사라져 아삭하게 씹히는 단감이 대중화되며 가을 식탁의 단골 손님이 되었다.
영양학적으로 단감은 천연 종합비타민에 가깝다. 감 한 개에 들어 있는 비타민 C는 사과의 열 배에 달하며, 붉은빛을 띠게 만드는 베타카로틴과 리코펜, 카테킨 등의 항산화 물질이 빼곡히 들어차 있다. 이러한 항산화 성분들은 환절기 급격한 기온 변화로 쌓이는 활성산소를 억제해 면역력을 지켜준다. 특히 단감에 함유된 탄닌과 비타민 C, 아스파라긴산의 결합은 알코올 분해를 촉진하고 혈관 벽을 탄탄하게 유지해 혈류 순환을 원활하게 돕는다.
한의학에서 감은 '시자(柿子)'라 하여 성질이 차갑고 맛은 달며 독이 없다고 전한다. 동의보감에서는 감이 갈증을 멎게 하고, 가슴에 맺힌 울화를 풀어주며, 폐의 열을 식혀 마른기침을 가라앉힌다고 기록했다. 가을철 건조한 공기로 인해 호흡기가 마르고 스트레스로 상체에 열이 오를 때, 단감의 서늘하고 촉촉한 성질은 솟구친 화기를 아래로 끌어내린다. 이때 자극받아 흥분했던 교감신경의 긴장이 누그러지고, 깊은 숨과 함께 부교감신경이 자연스럽게 활성화되어 심신이 차분한 이완 상태에 도달하게 된다.
식탁 위에서 단감은 견과류, 특히 호두나 잣과 만났을 때 완벽한 시너지를 이룬다. 단감에 풍부한 지용성 베타카로틴은 불포화지방산이 풍부한 견과류와 함께 섭취할 때 체내 흡수율이 비약적으로 올라간다. 또한 견과류의 따뜻하고 묵직한 기운이 단감의 서늘한 성질을 부드럽게 감싸주어 평소 배가 차가워 설사를 자주 하는 이들에게도 속 편한 안정감을 선사한다. 반면 게나 바닷가재 같은 갑각류와는 궁합이 상극이다. 게의 풍부한 단백질이 감의 탄닌과 만나면 단단한 응고물이 생겨 소화불량과 복통을 부르고 자율신경을 다시 곤두서게 만드므로 피하는 것이 지혜롭다.
단감이 나뭇가지 끝에서 가을 햇살을 품어냈다면, 대지 깊은 곳에서는 땅의 정기를 빨아들인 강화 순무가 자줏빛 얼굴을 드러낸다. 순무는 지중해 연안이 원산지이나, 실크로드를 거쳐 고려 시대 이전 한반도에 전래되었다. 특히 삼국시대부터 유배지이자 군사 요충지였던 강화도의 독특한 해풍과 미네랄이 풍부한 황토는 순무가 자라기에 최적의 터전이 되었다. 다른 고장에서는 결코 흉내 낼 수 없는 강화 순무 특유의 달콤하면서도 알싸한 겨자 맛과 고소한 인삼 향은, 험난한 해풍을 견디며 스스로를 지켜낸 뿌리채소의 단단한 생명력 그 자체다.
영양학적 관점에서 강화 순무는 십자화과 채소가 지닌 강력한 약리 작용을 고스란히 품고 있다. 껍질의 고운 보랏빛에는 강력한 안토시아닌이 농축되어 있어 혈관을 깨끗하게 청소하며, 순무 특유의 톡 쏘는 향을 내는 이소티오시아네이트와 글루코시놀레이트 성분은 체내 염증을 억제하고 항암 효능을 발휘한다. 또한 무보다 훨씬 풍부한 디아스타아제와 아밀라아제 등 천연 소화 효소들이 위장 점막을 보호하고 음식물의 분해를 돕는다. 위장이 편안해지면 미주신경(Vagus nerve)을 타고 뇌로 연결되는 소화계-뇌 축이 안정되면서 몸 전체의 부교감신경이 순조롭게 작동한다.
한의학에서는 순무를 '만형(蔓菁)'이라 부르며 성질이 따뜻하고 맛은 달면서도 맵다고 보았다. 본초강목에서는 순무가 맺힌 기운을 풀고 오장을 이롭게 하며, 뱃속을 따뜻하게 덥혀 체기를 내리고 담을 삭인다고 극찬했다. 일반 무가 성질이 서늘해 열을 내리는 데 주로 쓰인다면, 순무는 기운을 북돋고 속을 덥혀 순환을 돕는 따뜻한 보약의 결을 지닌다. 가을바람에 장기가 움츠러들고 소화 불량으로 전신이 무거워질 때, 순무의 알싸한 기운은 꽉 막힌 중초(소화기)의 기운을 뚫어 전신의 기혈을 막힘없이 돌게 만든다. 속이 훈훈하게 풀리면서 몸은 비로소 진정한 휴식을 맞이하게 되는 것이다.
강화 순무의 최고의 짝꿍은 바로 가을 바다의 풍미를 담은 밴댕이젓갈이나 새우젓이다. 순무 김치를 담글 때 젓갈을 듬뿍 넣으면, 발효 과정에서 젓갈의 단백질 분해 효소가 순무의 거친 섬유질을 부드럽게 삭히고 감칠맛을 폭발시킨다. 또한 젓갈의 풍부한 아미노산과 칼슘이 순무의 비타민 및 미네랄과 결합해 장내 유익균을 늘리고 위장 면역을 극대화한다. 가을철 갓 지은 햅쌀밥에 잘 익은 강화 순무 김치 한 점을 올려 씹을 때 퍼지는 알싸하고 구수한 위로는, 지친 일상을 버티느라 메말라 있던 오장육부를 부드럽게 적셔주는 가장 온화한 명약이다.
가을의 정점인 10월, 붉게 물든 단감의 달콤한 차분함으로 상체의 흥분된 열기를 가라앉히고, 단단한 강화 순무의 따뜻한 생명력으로 복부의 냉기를 몰아내 보자. 팽팽하게 당겨진 활시위처럼 굳어 있던 몸과 마음이 비로소 느슨한 호흡을 되찾고, 부교감신경이 이끄는 깊고 고요한 평온 속으로 빠져들게 될 것이다. 자연이 계절에 맞추어 열매를 맺듯, 우리의 식탁도 계절의 호흡과 나란히 발을 맞출 때 몸은 스스로 치유의 길을 찾아간다.
글쓴이
정이안원장-한의학박사, 정이안한의원 원장이며, 자율신경연구소 원장이고 동국대학교 한의과대학 외래교수이다. 저서로 안티에이징 시크릿 - 자율신경건강법, 마흔 달라진 몸을 되돌릴때, 생활 습관만 바꿨을 뿐인데, 몸에 좋은 색깔음식 50 외에도 다수의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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